유학·조기유학/뉴질랜드 조기유학

뉴질랜드 타우랑가 유학원 - 8년째지만 더 신중해지는 이유

Robin-Hugh 2013. 4. 24. 03:59

뉴질랜드 타우랑가에 이민 와서 살기 시작하고..     

벌써 뉴질랜드 타우랑가 신문사/ 타우랑가 유학원을 시작한지도 벌써 8년째. 

이제서야 드디어 타우랑가의 여러 학교 교장 선생님들과 친구같다는 말씀도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여러 업무로 자주 만나게 되는  

타우랑가의 각 학교 교장 선생님들, 그리고 해외유학생부 디렉터들이십니다. 

(그동안 이런 사진 없었는데요. 제 개인적으로도 모아두면 좋겠다 싶어 최근에 시작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만나면 서로 껴안고, 뺨에 키스도 하고... 뭐 그런 인사를 나눕니다. 

제가 유일하게 껴안으며 인사를 하는 분이 타우랑가 보이스 칼리지 해외유학생부 디렉터 아네트 로프 선생님이십니다. 

 

저랑 인연도 정말 깊습니다. 초기 영어학원 세팅할 때 자문부터 시작해서 직접 우리 한국 학생들 수업도 맡으셨었죠 

학교에서는 우리 한국 학생들의 어머님 같은 분이시지만...

저와 저희 유학원 직원 모두한테는 마치 누님 , 언니 같이 솔직한 애정을 보여주시는 분이랍니다.  

저도 고민거리가 있으면 언제든지 제일 편하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부탁도 하고 

"당신들이 뉴질랜드 최고다!"라고 언제나 말씀하시면서 어깨를 다독여주시는 마음 따뜻하고 활기차고, 명랑한 선생님. 

 

 

학교도 저희 사무실 바로 앞이라 가장 자주 오시는 선생님 중 한분.

조금만 급하면 학생들 데리고 저희 사무실로 그냥 길 건너 바로  오십니다. 

이날도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큰 소리로 웃으면서 혼자 쑤욱 오셨습니다.

 

그린파크 초등학교의 그래엄 린드 교장선생님. 

한국 유학생에 관한 관심이라면 타우랑가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실 교장선생님이시고요.  

현재는 타우랑가 지역 학교 연합체인  Education Tauranga Inc 회장직도 맡고 계십니다.  

 

작년 9월에 올리브선생님들과 함께 한국에서 열린 유학박람회에 참가도 하셨고요. 

한국의 자매학교 방문 때문에 1년에 2-3차례는 한국에 오가시는 정열적인 교장 선생님.  

저희 사무실에 가장 자주 오시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십니다.  이날은 세계음식축제 포스터를 갖고 오셨어요. 

 

올해 2013년 9월에는  타우랑가의 모든 학교 대표들과 함께 한국에 가서, 

서울과 부산에서 두차례 유학설명회 (타우랑가 유학원 주최) 하자고 하시네요.  아직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뉴질랜드 타우랑가엔 와이카토 대학교 (Waikato University) 타우랑가 캠퍼스가 있고요. 

Bay Of Plenty Polytechnic (BOP 폴리텍)이 있습니다.  저희 유학원에서 모두 입학수속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이 두개 학교는 각 학과가 연계되어 있어 대학 학위 코스는 폴리텍에서 시작을 해도, 졸업은 와이카토대학교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전공학과가 타우랑가에도 많습니다.  

 

BOP 폴리텍의 인터내셔널 매니정인 팸 심슨 선생님이십니다. 

지난주에 윈드미어 캠퍼스 코스 견학갔다가  함께 가셨던 어머님이 이 사진을 찍어주셨습니다. 

그동안 영어 성적 때문에 폴리텍, 와이카토대학교에 입학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자체 입학시험과 인터뷰는 꼭 이분을 통해야 

학교 입학허가서를 받을 수 있었지요. 지금은 대학교에서 입학 사정관이 따로 있지만 전체 유학생들의 행정, 관리 등 모든 책임은

이분이 담당하고 계십니다.  유쾌한 성격에  가끔 히스테릭하다는 지적도 받았고 저도 각별히 신경을 썼었죠. 


종종  "타우랑가에 당신들이 있는게 자랑스럽다! 최고다!" 라고 말씀합니다.   

폴리텍 직원들이 참 자주 바뀝니다. 그 때마다 터줏대감 팸이 새 직원들과 함께 저희 사무실로 올 때 하는 말입니다.   

 

곧 BOP 폴리텍도 타우랑가 신문사 웹사이트에 후원사 웹배너를 올리게 됩니다. 앞으로 이 학교에 개설되어 있는 다양한 

유학후 이민 코스, 취직에 필요한 각종 자격증 코스 등도 적극적으로 한국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분들과는  (앞으로도 다른 학교 선생님들과의  사진이 주욱 올려지겠지만요) 

유학원 업무상 그냥 아는 사이가 아니라... 같은 동네 사람이면서(이 부분이 아주 중요하더군요), 

동업자이면서, 유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 어떻게 최고의 헤택을 드릴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는 친구들이랍니다.  

 

어차피 저야 영주권을 갖고 있고, 뉴질랜드 타우랑가 진짜 사랑하고, 여기서 아이들 키우고 있습니다.  

여기 타우랑가에서 은퇴하고 늙을 때까지 살지 않겠어요?

이분들도 여기서 그렇게 사셨고, 또 앞으로 살아가실 분들이잖아요.  

 

한국에서 일 있을 때만 연락하는 대형 유학원과 다르겠지요, 

오클랜드에서 일하면서 타우랑가 한번도 안 와본 유학원 사람들과 다르겠지요,   

워크비자로 잠시 잠깐 일하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문자들과도 물론 다르겠지요. 

 

뉴질랜드 타우랑가 사람들은 참 보수적이라고 합니다. 가끔은 배타적이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도시처럼  직무상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변화무쌍한 생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작은 도시에서 오래 함께 살다보면 인맥, 친구, 추천 등에 의한 전통적인 방식에 의존해서 업무처리가 되는 경우도 더 많습니다.  뉴질랜드 사람들도 사실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한명의 친구가 되면,  그 사람은 누가 너 잘 안다고 하더라, 그 사람도 잘 알지?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렇게 아는 사람의 검증부터 있어야 새로운 친구 사귀기 쉽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그만큼 더 걸립니다. 

즉, 개인적인 학벌, 학력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온 실제적인 경험, 경력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추천받을만한가? 이런 사회적인 요구와 기본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물론 유머러스하고 이방인에게 친절하고 예의도 바릅니다. 하지만 깊이있게 서로 신뢰하기까지는, 

 

자기 마음속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고, 함께 공유하기에는 (서로 성장배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신뢰와 평가가 쌓이면서 그렇게 관계가 발전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사실 저 자신도 전형적인 한국사람인지라 .. .버블리(수다)스럽지도 못하고 조용한 사람입니다.   

헛자랑질하는 사람도 아니라서요.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는 시간이 사실 남들보다 더 오래 걸립니다. 

 

어제 한 중고차 키위 사장님은 "양사장 이름으로 외상해놓을테니까 자동차부터 갖고 가시라 " 하셨답니다. 

학교 교장 선생님들은 "약속 잡지 말고 " 언제든지 학교 집무실로 편하게 와라 " 하시기도 합니다.  

- 그래도 저는 항상 약속을 잡고 갑니다만 - 

 

자주가는 은행에 가면 전직원들이 인사를 나누는 친한 분들이십니다.  안되는 것도 가끔 특별하게 사정을 봐주십니다. 

왜냐면 단 한번도 금전적인 사고가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겠지요. 

 

 

배사장님 또한 타우랑가 전 부동산 업체와의 친분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 산 연륜답게 모르는게 없는 분이십니다. 

올리브 선생님,  무슨 일이든 정말 열심히 하고, 꼼꼼한 프로세셔널이라는 찬사를 자주 듣습니다. 




사람 사이라는 것이 한쪽만 잘한다고 관계 자체가 원만한 것이 아니겠지요.

앞으로 시간이 지날 수록 그동안 쌓아놓은 신뢰와 함께 저희 이름에 걸맞게 - 타우랑가에서 - 살자면 

더욱 조심하고, 신중해야 되겠지요.  우리 아이들 친구들이 있고, 그 학부모님들이 있고, 

심지어 각 학교의 우리 유학생들이 수업받고 있는 각 학급의 담임 선생님들도 많이 알아나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고, 힘들어지는 곳.   

 

바로 여기는 뉴질랜드 타우랑가입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 두가지는 이렇습니다. 

 (1)  타우랑가를 한국에 알리기 

(2) 뉴질랜드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우리 모두가 한국 대표선수들입니다. 그중에서도 타우랑가에서 '한국인'하면 바로 

  저희 타우랑가 신문사/ 타우랑가 유학원이 그 중심에 있으니 더욱 조심하고,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겠지요. 

  앞으로의 저희 노력은 더욱 그렇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