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사고가 났다. 보닛이 박살나고 견적이 수 천불에 육박했다. 뉴질랜드 조기유학을 시작한지 2년 남짓 했을 때 이곳에서 사귄 친구네 이야기다. 다행히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난 오전시간대의 일이라 엄마 혼자였고, 다친 데는 없었지만, 그 사고의 원인을 물으니 참으로 황당했다.
“전봇대를 박았어. 햇빛 때문에 아무것도 안보였다구”
오전 9시경 뉴질랜드의 여름 햇살은 가히 살인적이다. 눈부시다는 이야기로는 설명하기 힘들고 야구장을 자주 다니지는 않았지만, 야간 경기장을 비추는 대형 조명장치 수백 대를 10미터 앞에서 보고 있다고 설명하면 될까?
가장 짙은 썬글래스를 쓰고 윈도우 아래 차단막을 내려도 정면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피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뉴질랜드 운전에 미숙했던 초기에는 귀막고 눈가리고 뒤에서 옆에서 아무리 눈총을 줘도 이렇게 눈앞이 캄캄(?)할 때는 길옆으로 차를 세우거나 시속 20-30로 거북이 걸음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외국인이라서가 아니라 뉴질랜드인들도 여름이 되면 만반의 대비를 하고 그들 말로 소위 SUN-SMART가 되기 위한 지침을 학교에서도 철저하게 교육을 시킨다.
그 세 가지 지침은 바로 Slip(입고), Slap(쓰고), Slop(바를 것)이다. 한번은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바닷가로 가는 필드트립에 핼퍼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지도교사가 이 3가지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면서 뉴질랜드가 지구상에서 자외선이 가장 세고 햇빛으로 인한 대미지를 입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Skin cancer 뉴질랜드인이라면 무좀처럼 앓는 일반적인 병이라는걸 새삼 알게 되었다.
집밖 출입을 삼간지 일주일 만에 눈에 붓기가 가라앉았다. 썬글래스만 달랑 쓰고 로토루아 레인보우 스프링스에 아이들과 놀러 갔었는데, 돌아오니 온 얼굴이 부어오르고 껍질이 벗겨지면서 벌개지기 시작했다. “ 엄마 얼굴이 이상해요 ” 유정이가 킥킥댄다. 해물국수를 거하게 먹어 내가 해물 알레르기가 있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생전 경험해본적도 없는 햇빛알레르기였다. 머릿속까지 부어올라서 긁적긁적, 아주 제대로 데었었다.
다음 주면 인터미디어트에 다니는 아들이 5박6일의 긴 스쿨캠프를 떠난다. 그동안 엄마의 보살핌으로 관리(?) 되었던 피부가 일주일 만에 폭삭 도루묵이 되겠지만, 가방 안에 썬 크림을 꼭 챙겨서 보내야지. 발바닥은 포기하더라도 얼굴은 포기 못해. 꼭 발라야 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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