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방학은 저희 가족이 뉴질랜드 와서 처음 맞는 여름방학이었습니다.
집집마다 6주의 긴긴 방학을 어떻게 보내나 다들 나름 걱정이셨을 텐데,
저희는 방학동안 제 친정 부모님과 동생이 다녀가는 바람에 아주 바쁘고 알차게(?) 보냈답니다. (더불어 지출도 ...ㅎㄷㄷㄷ)
근대가 나무처럼 자생하던 버려진 울 집 텃밭을 보고 눈을 빛내시던 부모님이 정성껏 가꾸어 주셔서
지금 저희 텃밭에선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고요,
정체모를 삐죽한 풀들만 자라던 화단엔 알록달록한 꽃들이 방긋 웃고 있습니다.
아직 드라이버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제가 40년 실전 골프를 익히신 친정 아부지의 코치 아래 처음으로 필드도 나갔고요.
(집에서 썩고 있던 골프장 회원권을 드디어 활용할 수 있었죠.)
한국에서 온 식구들에게 최대한 많은 뉴질랜드를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발바닥에 땀나게 여행도 다녔습니다.
가까이 로토루아 부터 타우랑가 근교의 타운들, 해밀턴, 반지의 제왕촬영지인 마타마타의 호비튼, 와이토모 반딧불이 동굴,
그리고 좀 더 멀리는 타우포를 거쳐 네이피어, 그리고 가넷 서식지까지...
비록 북섬 일부였지만 뉴질랜드의 축복받은 자연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지역 여행에 대해 또 글을 올리게 될 지 모르지만,
오늘은 케이프키드내퍼스의 가넷 서식지 여행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네이피어는 타우랑가에서 4~5시간 차를 달려 가야하는 거리에 있죠.
가넷 서식지인 케이프 키드내퍼스는 네이피어에서 다시 해안을 따라 20여분 달려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솔직히 철새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없는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보다도 트랙터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해변 모래사장을 달리는 여행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뉴질랜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체험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가넷이 서식하고 있는 절벽까지 가자면 only 도보나 트랙터로 물이 빠진 해안을 따라 가야하기 떄문에
하루에 한 번 썰물 때 이쪽 저쪽으로 5시간동안에 맞춰 일정이 잡혀있습니다.
즉 매일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싸이트를 통해 미리 출발 시간을 알아놔야 하고 미리 예약까지 해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저희는 오후 5시에 출발하는 일정이었습니다.
그 곳은 동쪽 해안이기에 해안 뒤쪽으로 바로 솟아있는 절벽 뒤로 해가 넘어가 따가운 여름 해를 피할 수 있어 좋았고
돌아올 땐 해지는 바다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운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를 이끌어 주신 트랙터 드라이버 겸 가이드분 말로는
그 날 파도가 세고 일기가 다른 날에 비해 썩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늘은 구름한 점 없었지만, 바람이 많이 불고, 해수위가 높은 날이었는지,
코스 요소요소에 바다가 너무 깊게 들이쳐 트랙터들이 쉽사리 앞으로 나가질 못했습니다.
게다가 워낙에도 절벽에선 지금도 계속 바위나 나무가 이따금 떨어져 길을 막기 때문에,
나무 피하랴 바위 깨랴... 9km 거리의 절벽 아래까지 가는데 두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여정이 지겹지만은 않았던 것이,
우선은 경치를 찬찬히 즐길 수 있고,
간간히 파도의 습격으로 바닷물을 뒤집어 쓰기도 하고,
트랙터 바퀴가 모래에 빠져 다 내려서 일부 구간 걸어가기도 하고,
독수리 오형제가 일사 불란하게 체인을 이 차에 연결했다, 객차를 떼어냈다 다시 붙였다, 트랙터 두대를 연결해 객차를 빼냈다...
바위를 깨서 길을 정비했다... 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참, 독수리 오형제는 저희 가족이 네대의 트랙터를 운전하며 우리를 이끌었던 멋진 아저씨들에게 붙인 별명입니다.
(트랙터는 네대지만 한명의 스페어? 요원이 더 있더군요.)
그 중에도 우리의 No. 2 트랙터를 몬 아저씨를 우리는 "상남자'라 칭했습니다.
넘버 2 임에도 제일 먼저 출발할 뿐만 아니라, 모든 코스에서 다른 트랙터의 추월을 허락하지 않고,
파도가 크고 물이 깊어 지나가기 어려워 보이는 코스를 제일 먼저 돌진하는 저돌적인 성격에,
위험하니 앉아 있으라는 주의를 계속 안듣던 키위 청소년들을 따끔하게 주의주던 단호함,
그리고 돌아오는 길엔 역시 제일 먼저 출발해서 다른 트랙터들이 안보일 정도로 쌩 달려 신속하게 출발지로 돌아오는 화끈함까지...^^*
키만 좀더 컸으면, 몸만 좀 더 날씬 했으면, 얼굴만 좀 덜 동그랬으면...ㅎㅎ
서식지 아래 해안에서 절벽 까지 오르는 길과 그 위에서 본 풍경은
해질녁이 가까와 낮아진 태양 각도와 함께 뭔가 다른 행성에 도착한 듯한 몽환적인 광경을 연출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지금부터 슬라이드쇼를 시작합니다.
요렇게 생긴 트랙터 네대에 나눠타고 가게 됩니다.
각 트랙터는 수레를 두개씩 연결해 끌고 있죠.
독수리 오형제 중 대장이 여행의 개요와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절벽아래 드러난 모래사장위로 저런 거친 파도를 뚫고 우리의 트랙터는 달려갑니다.
처음 해안으로 접어들자마자 덮친 파도에 바다쪽으로 앉은 우리는 엉덩이까지 다 젖고 맨붕상태...;;;
울 아들은 자리를 잘 만나 티셔츠까지 흠뻑 젖은 상태.
해안선을 따라 가다 나오는 난코스 (해안선이 좁은 곳)를 파도가 최대한 물러 갔을 때 리듬을 타서 지나와야 합니다.
가는 틈틈이 설명도 해줍니다.
이런 형상의 절벽은 수만년에 걸쳐 처음엔 해수면 아래 있던 절벽이 점점 솟아 오르면서
바다쪽으로 난 폭포아래 소용돌이가 생기면서 벼랑이 점점 안쪽으로 깎여 만들어 졌답니다.
우리는 수만년에 걸쳐 형성된 지층도 구경하고,
모래에 바퀴가 빠진 트랙터를 끌어내는 '상남자' 도 구경하고,
구간구간 걸어서 지나가기도 하고,
엄청난 바위가 가로막을 경우엔 깨부수기도 하며
바위 위에 엎드린 물개와 인사도 하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새끼 갈매기도 만납니다. (길 잃은 줄 알았더니 뒤에 어미가 두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멋진 경치와 함께 점점 다가오는 키드내퍼스 봉.
트랙터에 내려서 올라가는 길은 멀기만 하고... (약 20분정도 걸어 올라갑니다.)
케이프 키드내퍼스는 마치 평평한 고원 같은데, 그 넓은 평원 중 한쪽 귀퉁이 좁은 지역에 우글우글 모여 사는 가넷들.
절벽 앞쪽으로 튀어나온 돌산들이 있는데, 거기도 가넷들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야, 너희 자리 잘 잡았다. 거기가 더 아늑해 보이네~
몽환적인 분위기의 고원... (사실은 똥밭...각종 동물 똥 조심하며 걸여가야 함)
개마 고원이 이런 분위기일까...
안개가 스며들어 더욱 멋진 풍경
다시 트랙터가 기다리는 해변으로 내려가니 해는 다 넘어가고...
바다와 소년과 새는 멋진 광경을 연출하고...
저녁식사 시간이므로 간단한 요기거리를 준비해 온 사람들... 어째 피난 열차를 탄 난민 분위기.
노을 지는 바다를 뒤로하고 우리의 '상남자' 또다시 제일 먼저 달려갑니다.
성질급한 한국인 성미에 딱이었어요~
*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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