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도 변변치 못하는 원래 바탕에다가.. 점점 나이 들면서 싸울 일도 더 없어지지만 가끔은 싸우고 싶을 때도 생기게 마련이다. 아직도 마음은 열혈청춘 20대고, 옳은 것을 옳다고 해야 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꼭 꼬집어 말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니 말이다. 또 점점 완고해지고 고집불통이 되는 전형적인 아저씨에다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외국에서 조금 더 먼저 살아보고 있다고 나름 "이건 이렇습니다"라며 죄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주장할 때도 있다.
그러다보니 자꾸 불안하기도 하다. 언젠가 싸움에 말릴 것 같은 초조함도 생긴다.
싸움이라는 것은 보통 상대방과 내 의견이 틀린 상황에서 자기 주장, 생각, 의견을 서로 내세울 때 주로 생긴다.
이 때 기본 전제는 자기 생각이 완벽하게 맞다는 확신과 단정에서부터 출발한다.
또는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모든 일의 결과(심지어 동기까지도)를 남의 탓을 돌리며 비난할 때부터 불거지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에 실린 재밌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본다.
"싸움을 하지 않는다"
내 성격은 결코 온후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솔직히 타인과 싸움을 한 적은 한번도 없다. 적어도 내 쪽에서 말하자면 누군가와 싸워서 헤어진 기억은 별로 없다. 욕을 들어도 그렇게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의 하나가 될지도 모르겠다.
(중략)
칭찬 받는 일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말하자면 비난 받는 쪽이 많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는 바보다'라든가 '무라카미는 거짓말쟁이다'라든가. 거짓말이 아니다.
솔직히 기분은 나쁘다.
(중략)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넌 위선자야"라는 비판에,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난 위선자가 아닙니다!"라고 가슴을 펴고 반론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나라면 그런 반론을 할 수 없다.. "듣고 보니 내 속에는 위선적인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하고 생각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의미에서 나는 확실하게 바보이고, 거짓말쟁이다.
(중략)
(--- 나는 정말 엉망진창이라는 내용을 열거해본다)
음~ 물론 '많든 적든'이란 주석이 붙는다고 쳐도 이렇게 자신의 결함들을 리스트로 만들어보면 정말로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인간처럼 보이는군.
(중략)
그러나 한번 그런 식으로 내가 마음을 열고 나면, 잃어버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누구에게 아무리 심한 말을 들어도 두렵지 않고, 특별히 화가 나지 않는다. 연못에 빠져 옷이 다 젖었는데, 누가 물을 또 뿌려봐야 차갑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인생을 마음 편하다고 생각하면, 상당이 나는 마음이 편하다. 오히려 '그렇게 나쁜 인간인 데에 비해 잘도 건투하고 있잖아."하는 자신감마저 마음속에서 끓어오를 정도이다.
상당한 확신을 갖고 생각하자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사람을 깊이 다치게 할까? 그것은 잘못된 칭찬을 받는 것이리라. 그런 칭찬을 받아 잘못되어 간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인간이란 칭찬을 받으면, 거기에 맞추려고 무리를 하는 법.
그래서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린 케이스가 적지 않다.
그래서 당신도 누군가에게 이유 없는 (혹은 이유 있는) 험담을 듣고 상처를 입더라도, "아, 잘됐어. 칭찬받지 않아서 기쁜걸, 하하"라고 생각해보도록 하자. 하긴, 그런 생각은 좀처럼 하기 힘들지만. 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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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뒤에 실린 작가 후기에 따르면
이 짧은 에세이 모음집은 20대 전후의 젊은 일본 여성들이 보는 잡지에 연재한 것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쓰는 만큼, 한가지 규칙을 정해 매주 한편씩 썼다고 하는데,
그 규칙이란 "안이한 단정 같은 것만은 피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즉, 이런 것을 모두 알고 있을테니 일일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거야"라는 전제를 없애는 것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하는 강요하는 듯한 것도 가능한 한 쓰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사람사는 세상.
버들가지처럼 부드러워야한다고들 한다.
흑백논리처럼 명확하게 모든 것을 구분하지 않은 융통성과 개방성.
혹 비난이나 상처를 받거나 간혹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바로 톡톡 튀어오르는 복원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떨 땐 정확히 아는 척 하는 것(이러다 싸움난다!)보단 ,
알듯 모를 듯 모호한 상태를 견지하며 마음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내가 아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인가?
세상은 하도 빨리 변해서 옛날에 내가 알았던 것이 지금은 거짓이 되었고.
지금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은 또 그렇게 곧 다시 바뀌게 될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옳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옳지 않은 것도 있고,
어떤 때는 옳은 것이 다른 때는 옳지 않은 것이 되기도 한다.
잠시 그렇게 머리 쓰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마치 저기 떠도는 공기처럼...
산과 바다가 지상 낙원에 버금간다는 뉴질랜드, 그저 맘이라도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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