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바시르씨와 그의 파트너 글렌 핀든씨가 ‘알몸휴가(nakation)’를 즐기고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는 거구일 뿐만 아니라 운동화와 선글라스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벌거벗고 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이 반짝인다. 노란색 사롱이 그녀의 등 뒤에서 멋지게 휘날린다.
그녀의 파트너는 내 옆에 서서 뉴질랜드 나체주의자 연맹(the New Zealand Naturist Federation)의 포스터 속에 들어있는 유명 인사를 내게 소개한다.
60세인 글렌 핀든씨의 이 실물 크기 포스터에는 그녀의 미소 띤 얼굴 위로 “당신의 옷과 함께 스트레스를 벗어 던져라.”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현실의 글렌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미소는 포스터의 그것과 같았지만 의상은 덜 파격적이었다. 그녀는 앞의 단추가 채워진 긴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파트너인 콜린 바시르씨는 꽃무늬 사롱과 회색의 “자연으로 돌아가자(gonatural)”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오늘은 좀 쌀쌀해서요.”라며 그가 옷을 걸친 이유를 설명한다.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나체주의자들은 항상 나체로 생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나체일 때 보다 편하다고 느낀다.
오늘 마타타(Matata)에 소재한 그들의 야영장에서 열린 베이 오브 플렌티 선 클럽(Bay of Plenty Sun Club) 오픈 데이 행사에서 만난 이 클럽 회원들은 대부분 옷을 입고 있었지만 몇몇은 일부만 가린 상태였다.
이런 상황은 나로 하여금 시선 둘 곳을 찾기 어렵게 만들었고 그래서 나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지난 4월 이래로 이 클럽의 회장을 맡고 있는 배리 딕슨씨는 하의를 입지 않은 채 사격을 즐기고 있는 몇몇 회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신도 녹색의 운동복 상의 외에는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
마타타에 살고 있는 그는 이미 일단의 나체주의자들이 인터뷰를 위해 모여든 테이블 주위에서 어디에 앉아야 할지 조심스러워 했다.
운동화와 청바지, 티셔츠 그리고 운동복을 입고 있던 나는 이 테이블에서 유별나게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닐 지라도 너무 많이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모든 선 클럽 회원들이 이곳에 “알몸휴가”를 즐기기 위해 모였다. 그들이 나체주의자가 된 경위는 정말 다양하다.
타우랑가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글렌씨는 1970년대 초 그녀의 전남편으로 인해 나체로 생활하는 즐거움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부부는 베이 오브 플렌티 선 클럽을 따라 오호피(Ohope)해변으로 주말 여행을 갔었고, 그때 모든 주변 사람들이 나체로 있었지만 그녀는 비키니를 고집했다.
“전 무척 망설였어요. 다른 모든 사람들이 벌거벗었지만 전 비키니를 입고 비치 타월을 깔고 앉아 있었죠. 한참이 지나서 전 ‘벗지 못할 이유가 뭐야?’라고 생각했어요. 비키니를 입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것보다 더욱 남의 시선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주의(naturism)’는 그녀의 자신감도 일깨워 주었다.
“처음에는 약간 긴장되지만 일단 체험하고 나면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테이블에 모였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나체주의자가 되기 전에 전 수줍음 많고 말 수가 적은 내성적인 사람이었어요. 전 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전혀 없었죠. 나체주의가 절 송두리째 바꿔 놓았어요. 제 몸과 제 자신을 인정하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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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모델일 수는 없어요. 모든 사람들이 흉터나 혹 따위를 지니게 마련이죠. 출산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보통 임신선(stretch marks)이 있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을 인식하지 않아요.”
“클럽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우리는 그날 누가 옷을 입었고 누가 입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자주 있어요.”
콜린씨가 그녀의 말에 동조한다. 그는 그와 그의 마지막 아내가 와이카토 야외활동 동호회(the Waikato Outdoor Society, WOS) 회원이었을 때 글렌을 만났다.
콜린씨는 벌거벗은 세상보다 옷을 입은 세상 혹은 “섬유세상(textile world)” – 그는 옷을 입는 세상을 그렇게 부른다 – 이 그를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고 한다.
“섬유 세상에서는 전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지만, 나체주의자들 속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벌거벗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제 함께 지낸 지 4년 된 글렌과 그는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릴 때를 대비하여 사롱을 준비해두고 정기적으로 집안에서 나체로 걷는다.
글렌씨은 심지어 집 식당 벽에 데포딜 꽃을 배경으로 나체로 찍은 사진을 캔바스에 인쇄하여 걸어 놓았다.
글렌씨은 인터뷰 도중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태양에서 내뿜는 열기를 느낀 탓인 지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비나체주의자들에게는 그처럼 벌거벗는 일이 질색일 수 있겠지만 나체주의자들에게는 전혀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은 일반인들보다 더 성적으로 개방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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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휴가를 즐기러 이곳에 온 앤디와 리즈 본씨는 30년 경력의 나체주의자들이다. 오늘은 옷을 걸친 앤디는 옷을 벗고 있으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잊게 된다고 말한다.
“인생의 많은 부분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누구인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는가에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는 쓰레기 수거인이건 제빵사 또는 의사건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좋은 외모에 대한 압박은 어떻게 해야 할까?
글렌이 대답한다. “당신이 완벽하지 못한 신체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일 이예요.”
이 클럽의 50명 회원들 대부분은 30세 이상으로 각양각색의 외모를 지니고 있다.
“나체주의자는 어떤 한가지 기준으로 구분할 수는 없어요.”라고 글렌이 말한다.
“사람들 중에는 물론 나체로 지내는 것을 약간은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다만 옷을 걸치지 않은 채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예요.”
“사람들은 나체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샤워나 섹스 밖에 없다고 생각하죠. 그렇다면 우리는 하루 종일 샤워나 섹스를 해야 할 텐데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이 클럽 회원들은 대중문화의 득세에 힘입어 요즘은 나체주의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있다고 믿는다.
과거에는 일종의 “비밀단체”처럼 운영될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나체주의자들을 모든 일을 나체로 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식할 수도 있겠지만 이에 대해 글렌씨는 “no”라고 말한다..
“진정한 나체주의자는 그 누구도 불편하게 만들기 원치 않아요. 크리켓 경기장에서 옷을 벗는 자는 노출증 환자이지 우리가 아니에요.”
“우린 우리 집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잔디를 깎거나 정원 손질을 할 생각이 없어요.”라며 콜린씨가 동조한다.
작년에 일단의 나체주의자들이 오타고 철도 트레일(Otago Rail Trail)에 참가했을 당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을 통과할 때는 옷을 갖춰 입기도 했다. “우리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은 않아요.” 콜린씨가 말한다.
이런 클럽을 형성하는 것은 바깥의 사람들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게 함을 의미한다.
그들은 또한 피부암 문제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slip, slop, slap’[2]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대부분의 나체주의자들은 일반인들보다 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12년 전 베이 오브 플렌티 선 클럽 회원이 된 팻 딕슨씨가 거들었다.
그들은 날씨가 추우면 옷을 입고 옷을 벗는데 있어 수영장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문으로 들어와 상자 안에 옷을 담은 다음에 떠날 때까지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죠.”라고 콜린씨가 말하며 웃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오늘 난 완전히 벌거벗은 몸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 저편으로 한 여성이 블라우스를 벗어 던진다.
아무도 눈 한번 깜박이지 않는다.
같은 시간, 오클랜드에서 온 데스와 마가렛 부부는 하의 없이 티셔츠만 걸친 채 돌아다니고 있다.
데스씨는 조종사 스타일의 선글라스를 쓰고 파란색 셔츠만 입고 아래에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 나를 대하면서도 손을 엉덩이 위에 올려 놓은 채 아무런 거기낌이 없다.
그와 마가렛은 1975년 이래 줄곧 선 클럽 회원이었으며, 다른 지역에 있는 클럽을 서로 방문할 수 있는 점을 매력으로 꼽는다.
뉴질랜드에는 20개의 선 클럽이 있고, 총 1500명 이상의 회원들이 소속되어 있다.
글렌 대변인을 맞고 있는 뉴질랜드 나체주의자 연맹(the NZ Naturist Federation)은 회원 수를 늘리고 싶어한다.
글렌씨늰 “뉴질랜드에는 많은 ‘집안 장롱 나체주의자들’이 있어요. 우린 그들이 ‘사회적인 나체주의자’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간혹 변태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일에 조심해야 한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클럽에 가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회원들과 만남을 갖고 가입 전 세 번의 무료방문 기회를 갖게 된다.
베이 오브 플렌티 선 클럽에는 50명의 회원이 있고 최고령자는 85세이다.
그는 이름을 밝히려 하지 않았지만 1952년 이래 여러 지역의 선 클럽들의 회원이었다고만 밝혔다.
“내가 어렸을 때는 시골 벽지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우리가 창조된 그대로 나체로 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어.”라고 그는 내게 말한다.
“그것은 멋진 경험이었고 바로 자유지. 신선한 공기를 맘껏 느낄 수 있지.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고 더욱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해방’되는 거지.
아네트 가드너씨는 자신의 두 아이를 나체주의자로 길러냈고, 그녀의 남편인 애슐리가 관절염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클럽에 가입했다.
“햇볕이 관절염의 고통을 덜어주는데 도움을 주었어요.”라며 그녀가 말한다.
아이들은 나체주의자로서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지만 십대 때 어려운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팻은 아이들이 학교 체육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옷을 벗는데, 어째서 햇볕에 그을린 자국이 없는지 친구들로부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어째건 지금은 나체가 훨씬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콜린씨는 지금도 이웃에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고백하기로 결심한 날을 기억한다. “난 이웃들에게 이제 막 수영장을 갖게 된 친구 집에 갈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음, 사실 난 나체주의 클럽에 들어갈 생각이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이웃사람은 ‘사실 말이지 난 자네가 그 동안 원래 그랬었다고 생각했다네.’라고 말했어요.”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받는 일반적 반응은 그들이 더 많이 알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라고 콜린씨가 말한다.
뉴질랜드 나체주의 클럽 정보 www.gonatural.co.nz
<출처: 베이 오프 플렌티 타임스 =뉴질랜드 타우랑가 신문>
[2] slip, slop, slap = 옷을 걸치고, 선 크림을 바르며, 모자를 쓰자는 의미의 뉴질랜드 피부암 예방 캠페인 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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