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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와 그린피스(Green Peace) - 레인보우 워리어호 침몰사건

Robin-Hugh 2009. 7. 27. 11:35

 

  

그린피스(Green Peace)시작은 1969 10 암치카 섬에서 미국이 지하 핵실험을 실시한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진으로 인한 해일 피해를 겪었던 지역 주민들이 미국과 캐나다간의 국경을 막고해일을 일으키지 말라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시위를 무시하고 1971년에 2 핵실험 계획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 5명의 평화 운동가들이해일을 일으키지 말라 위원회를 캐나다 뱅쿠버에서성하였다. 이로써 그린피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71
년에 저항 시위를 위한 항해를 준비하는 창립 멤버의 사람이  '녹색 지구와 반핵 평화' 뜻으로 그린피스(Green Peace)라는 용어를 쓰게 되었다. 활동용 소형 어선필리스 코맥호의 이름을 그린피스호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린피스가 굳어졌다. 미국 정부는 1972 암치카 섬에서 핵실험을 포기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린피스는 프랑스 핵실험을 반대하기 위해 게릴라식 비폭력 저항을 계속했고, 고래 보호 단체로도 유명하다그 후 원자력 발전 반대, 방사성 폐기물 해양투기 저지 운동 등 폭 넓은 활동을 통해 1979년 전세계 5개 국가에 있었던 지부가 1992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에서 열린 국제연합환경개발회의(UNCED)를 통해 이들의 활동이 널리 알려지며 지부가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1985 7월에 일어난 레인보우 위리어 호( Rainbow Warrior) 폭파 사건은 그린피스의 활동을 전 세계인에게 알린 주요한 사건이었다

 

 레인보우 워리어호(Rainbow Warrior)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40주년인 86일을 기하여 프랑스 핵실험기지인 폴리네이시안 모루로아 환초 일대로 떠나기 위해 7 10일 뉴질랜드 오클랜드항에 정박해 있다 이날 자정 즈음에 폭파 침몰됐고 1명의 사상자도 발생됐다.

 

조사 결과 이 사건은 프랑스 대외 안전국(DGSE)의 공작임이 들어났고, 또한 프랑스 정부가 관련되어  프랑스 미테랑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최대 위기에  몰렸고, 에르뉘 국방장관은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임함으로써 전세계의 이목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2명의 프랑스 정보 요원은 10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나 프랑스 정부의 끈질긴 물밑 교섭으로 복역 1년도 안되어 남태평양의 한 프랑스령 산호초 섬에 위치한 군사시설로 이감된 뒤 이어 2년만에 프랑스로 되돌아갔다.

 

 1993년초 영국 근방의 세틀랜드 제도 해역에서 브레이어호의 8 5,000여톤의 원유 유출 사건 때에는 바다에 퍼진 기름 제거 활동과 함께 석유에 흠뻑 빠진 야생 동물들을  구조하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1995  프랑스가 또다시 남태평양의 한 섬에서  핵실험을 시도할 때  레인보우 워리어 호가 섬 주변에  숨어서 이를 감시하였다. 이 때 프랑스 특공대에게 쫓기는 추격상황이 그린피스 카메라맨들의 비디오 카메라에 녹화되어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공개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고래잡이 금지 협약을 위반한 노르웨이의 제품에 불매 운동을 벌여 세계 수천명이 이들의 캠페인에 동참하였고, 일본의 고래잡이 인체에 해로운  배기가스를 내뿜지 않는  자동차를 만들어 전세계에 홍보하였다또한 국제연합 총회에서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이 통과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